하느님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세례(洗禮)는 본래 물에 잠기었다가 나오는 예식이었지만 점차 물로 이마를 씻는 예식으로 간소화되었습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세례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하기 때문에 물에 잠기는 예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물로 씻는 것은 몸의 더러움을 닦아 내는 것이지만, 그러한 눈에 보이는 예식 행위로써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을 상징하고 또 내적으로 그것을 이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물은 생명을 싹트게 하고 성장시키는 한편 일순간에 생명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례성사 예식은 죄악에 물든 과거의 우리 자신은 죽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우리도 하느님의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세례성사를 받게 되면 우리가 물려받은 ‘원죄’와,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른 죄인 ‘본죄’를 모두 용서받아 깨끗한 몸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게 됩니다.
세례성사는 우리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영적 표시인 인호(印號)를 새겨 주기 때문에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를 받는 우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특정한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정하고, 대부모를 정하여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습니다.
기름 바름은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설명하여 줍니다.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은 이 기름 바름으로 성령의 인호를 받습니다. 이와 같이 안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전해 주는 상징적 행위이며, 기름 바름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견진성사로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받아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전파하고 몸소 실천하며, 교회 공동체에 충실히 봉사하는 일꾼이 됩니다.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았고,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마리아 사람들도 “베드로와 요한이 손을 얹자 성령을 받게”(사도 8,17)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견진성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 세례성사를 완성하는 성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풍부하고 다양한 선물들에 대하여 성서는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8,26-27; 1고린 12장; 2고린 13,13; 골로 1,8 참조).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는 지혜(슬기), 통찰(깨달음), 의견(일깨움),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외경(두려워함)(이사 11,2-3 참조)의 일곱 가지이며,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열매를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의 아홉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로서 일반적으로 12세가 넘고 교리교육을 충분히 받아 교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자세를 갖춘 사람이 받게 됩니다.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은 세례성사 때의 대부모를 견진성사의 대부모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받아들이신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 성체성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聖體]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음식이 나타내는 효과를 우리 안에 실제로 이루십니다. 곧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십니다. 주님을 모시는 영성체로 주님께 대한 일치가 증대되며,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에서 보호받습니다. 또한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확고하게 하여 줍니다.
성체성사는 언제나 교회의 공적 예배인 미사 중에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기 때문에, 모든 성사의 중심이고 정점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은 다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새롭게 얻어 신앙생활에 활력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굶주리는 그들에게 날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세적 생명을 유지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살도록 내려 주신 양식이었지만, 이 만나로써 하느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새로운 백성이 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실 성체성사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 활동을 하실 때 빵을 많게 하셔서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요한 6,1-15; 마태 14,13-21 참조)을 행하시면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미리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몰려드는 군중을 향하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51) 하셨으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구약의 예고를 완성하고 실현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손에 포도주 잔을 드시고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가 22,20) 하시며 당신의 피를 우리가 마실 음료로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은 당신의 피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어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온 인류를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풀어 주셨고,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새 계약을 맺어 주시는 중개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바치고 이를 우리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보증하여 주기에, 찬미와 감사의 제사입니다. 따라서 미사는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감사드리며 속죄하고 기원하는 가장 완전한 제사입니다.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의 핵심이며 정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체성사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성부께 단 한 번 봉헌하신 찬미와 감사의 제사에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를 참여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체성사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고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미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과 이웃과 확고히 일치합니다.
고해성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예식입니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불완전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가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함으로써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고해성사는 죄 때문에 받을 벌을 면제하여 주고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힘을 키워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해성사 때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죄의 용서 역시 하느님께서 직접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백자의 행위는 뉘우침(통회), 고백, 보속입니다. 가장 중요한 행위인 뉘우침(통회)은 지은 죄를 하느님의 법에 비추어 철저히 성찰하는 것과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을 더럽히고,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 공동체의 친교에 손상을 입혔으며,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음을 아프게 뉘우치는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받을 때는 사제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은 다음에는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을 하여야 합니다. 보속은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에게 끼친 손해를 갚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합당한 생활 태도를 다시 갖추기 위한 것이므로 성실히 이행하여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빚어지는 작은 죄(소죄)는 양심 성찰과 참회의 기도로써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거스르는 것과 같은 죽을죄(대죄)를 지었을 때나, 작은 죄일지라도 습관적이며 의식적으로 지었을 경우에는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죽을죄는 십계명에 나와 있는 중대한 일을 완전히 의식하면서 고의로 저지른 모든 죄입니다.
만일 고해성사를 받을 때 기억에 떠오르는 중대한 죄들 가운데 어느 것을 고의로 숨기거나 아무런 통회도 하지 않고 고백한다면 고해성사를 모독[冒告解]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이럴 때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인답게 병고를 이겨 내고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치유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더 큰 희망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병자성사를 합당하게 받으려면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고, 병자성사 후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됩니다. 이 때 모시는 성체를 노자(路資) 성체라고 하는데,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건너가는 데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병자성사는 병에 걸렸을 경우 몇 번이고 받을 수 있으며, 노환으로 기력이 쇠진해진 노인은 병세의 위험성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성품성사 예식은 주교의 안수와 장엄한 축성 기도로 거행되는데, 이는 서품된 사람들에게 그 직무에 필요한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에게는 영적 표시인 인호가 새겨지기 때문에 평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계승되도록 하느님께 제사를 거행하고(사제직), 하느님 백성을 돌보며(왕직),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예언자직) 직무를 사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들 역시 예수님께 부여받은 이 직무들이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자신들의 후계자(주교)와 그 협력자(신부), 주교와 신부를 도와 줄 봉사자(부제)를 선발하여 기도와 안수로 직무를 수여했습니다(사도 6,3-6). 이러한 직무는 대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부는 사제로서 지니는 품위는 주교와 같지만 사목직 수행에서는 주교들에게 딸려 있습니다.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를 중심으로 사제단을 형성합니다.
부제는 교회 봉사 임무를 위하여 서품되는 성직자로서 말씀의 봉사와 하느님 예배, 사목적인 지도, 자선 사업의 중요한 임무를 받습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자유로이 독신 생활을 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고, 그 뜻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세례 받은 남자에게만 주교가 성품성사를 줍니다.
혼인성사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혼인성사를 이루기 전과는 달리 더 이상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성사적 은총을 가진 초자연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이는 서로 상대방을 구원할 수 있는 지극히 은혜로운 사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 달리 부부 스스로 성사를 이룹니다. 이미 세례를 받기 전에 혼인한 부부가 세례를 받으면 그들의 혼인 생활도 성사가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혼인성사는 일회적으로 집전되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지속적인 성사입니다.
혼인성사에 대한 가르침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고, 그들에게 자녀를 낳아 번성하라고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창세 1,27-28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인 일부일처제(혼인의 단일성)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는 죽음 외에는 결코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가르치셨습니다(마르 10,2-9).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어 당신을 희생하셨듯이 부부는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에페 5,25-32).
혼인의 특성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입니다. 단일성은 일부일처제가 아닌 어떠한 다른 형태의 혼인도 배격합니다. 그러므로 중혼이나 축첩은 혼인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또한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부부가 서로 존경하며 신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기에,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맺어진 혼인을 깨뜨리는 이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부부의 혼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곧 부부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단일한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바치시어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는 자신의 신랑인 그리스도를 끝까지 사랑하고 증언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갈라질 수 없듯이, 혼인의 서약을 한 부부는 죽음이 아니면 갈라질 수 없으므로, 신랑 신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자녀를 낳아 기름으로써 혼인의 서약을 완성하여야 합니다.
혼인 장애의 상태에 놓인 이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지만 성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비신자와 혼인하려는 신자는 혼인한 다음에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태어날 자녀에게 천주교 신앙을 교육시키겠다는 서약을 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