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미사는 가톨릭교회인 천주교의 거룩한 제사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종교는 그것이 어느 것이든 제사의 행위를 거행한다. 이렇듯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종교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제사를 지내왔다. ‘제사’란 우선 인간이 종교의 본질적 요소인 신, 혹은 자연의 힘, 어느 초월자를 인정하고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나 자신을 만드시고 생사대권을 갖고 있는 하느님, 초월자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바치는 종교 심성의 표현이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완전한 최상의 제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즉 생명을 바치는 행위다(창세 22,1-11).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스스로 죽여 바치는 것은 인간생명의 생사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금지하시므로(천주십계 중 5계),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합당한 제물에 인간생명을 전가시켜 그 제물을 희생시켜 봉헌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제사를 보면, 인류 역사 시초에 아벨과 카인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은 깨끗하고 살진 양을, 카인은 곡식을 바쳤다. 그런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외적 행위는 인간의 내적 행위, 즉 겸허하고 충성되고 성실하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그러한 정성과 일치해야 한다. 그래서 성의가 없고 행실이 좋지 않은 카인이 바친 제사는 하느님께 의합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고 정성되이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느님께서 즐겨 받아 주셨다(창세 4,3-5).
인간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이 조물주 하느님께 생명과 구원의 무한한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하느님께 잘못과 죄를 범했을 때 용서와 속죄의 제사를 올리며, 또 인간이 행복하고 생의 의의를 찾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등의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이 죄악이 만연했던 세상을 심판하는 홍수에서 구조된 노아는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고(창세 8,20), 적을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이하여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의 제물로 야훼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창세 14,18-19). 아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과 죄악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야훼께 속죄의 제사를 올렸다(레위 16,1-28, 민수 19,1-10). 그리고 이스라엘 전 민족의 축제로 매년 추수 감사제로서 곡식들을 바쳐 야훼 하느님께 감사제를 올리는 초막절,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청하는 오순절 축제를 올렸다(탈출 23,16-19, 레위 23,9-22, 민수 28,26-31, 신명 16,9-17). 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고역과 노예 생활에서 탈출할 때 일어났던 기적적 사건과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해방절 축제를 대대로 지내왔다(탈출 12,1-14, 신명 1-8, 민수 9,1-14, 레위 23,4-8).
인간의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원하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며 지내던 구약의 제사는 전 인류의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한 신약의 제사를 준비시키는 예시였다. 야훼 하느님은 약속하신 대로(창세 3,15, 시편 110,1-4) 당신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요한 3,15-17) 완전무결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하느님의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갈바리아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온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구원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대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우리 인류의 죄악에 대한 대속 제물로 바치실 것을 예견하고, 당신의 몸과 피를 사도들과 함께 최후만찬을 하며 내어주었다. 빵을 드시고 사례하신 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또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사례하신 다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니라. 너희는 이 예를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마르 14,22-26, 마태 26,26-30, 루카 22,14-20). 이렇게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제사를 새롭게 하며,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의 파스카 신비의 재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최후만찬의 기념제로, 우리 인간들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서 신비롭게 하느님께 바치는 신약의 유일한 제사며 성찬이다.
제사의 행위 중에는 제물로 바쳐진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이것을 음복(飮福)이라 한다. 미사의 행위 안에서도 “너희는 받아먹어라”, “너희는 받아 마셔라.”고 한 예수의 말씀과 같이 제찬봉령(祭粲奉領)이라고도 하는 영성체(領聖體)가 있다. 따라서 미사는 다른 제사도 마찬가지지만 성찬의 잔치다. 봉헌된 제물을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의 행위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느님과 제물을 바치는 자들과의 일치를 이루게 하며, ‘같은 빵과 같은 잔’을, 즉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모든 이로 하여금 성령의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미사 성찬기도문 참조). 성찬에 참여한 자들이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주고받는 통교가 이루어진다. 즉 하느님은 인간에게 구원과 진리와 생명을 주시고 급기야는 당신 자신을 주시며, 인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그뿐 아니라 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성제인 이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순례자의 목적지인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영광과 승리의 축제를 미리 맛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상에서 참된 성전과 장막의 사제로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요한 계시록 21,2, 콜로 3,1, 히브 8,2). 그리고 우리는 지상의 미사성제로써 하늘의 만군의 무리와 더불어 주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일치에 한 몫을 차지하고 그들의 전구(轉求)를 구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며 기다린다(전례헌장 8 참조).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제사인 미사성제는 천상천하가 함께 어울려서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성스러운 잔치다.
이러한 미사의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에서 유래한다. 이 최후만찬은 고양(羔羊)의 피로써 구원된 이스라엘 민족이 대대로 기념해 오던 유태교의 파스카 축제 양식을 본 딴 것이지만, 그 내용과 차원에 있어 월등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의 파스카 잔치인 것이다. 최후만찬의 미사의 첫 형태는 시대를 거쳐 오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 공동체에서는 최후만찬 때와 같이 식탁 공동체에서 성찬례가 거행되었다. 즉 일반식사와 구별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소공동체가 일반 식사를 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어 먹고 마시는 성찬을 하였다(루카 22,20, 1코린 11,17-34, 사도 2,46). 그러나 이러한 식탁 소공동체로서의 성찬례는 신자 공동체가 비대해지므로 거기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실질적인 기술 문제와 난관과 남용의 우려로 인해 일반식사와 분리하여 따로 성찬례를 거행하였다(마태 26,26-29, 마르 14,22-25). 그 뒤 성찬례가 일반식사와 분리되어 거행될 때, 이 성찬례 전레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음의 타당한 준비를 갖추고자 성서봉독을 결부시켰다. 즉 유태인들이 샤밧 날 아침에 그들 회당에서 거행하였고, 그를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도 받아들여 아침.저녁 기도로 실천하여 오던 성서봉독 예배를 성찬례 전에 거행하게 되었다.
성서봉독 예배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연결되어 미사의 형태를 이룬 것은 대략 150년경이다(Justinus Martyr, Apologia I, C. 65-67). 그 뒤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파로 여러 민족이 그리스도교로 귀화하고, 따라서 각 민족과 지역의 풍습과 전통이 다르므로 미사의 본질적 요소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가 가능한 외적 요소와 기도들이 첨가되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50년경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미사의 구성요소가 된 뒤 오늘날과 같은 미사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7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다. 3세기 초에 거행되던 미사 거행 양식의 중요 요소들을 보면, 참회 예식(시초에는 부복자세, 후대에 와서 죄고백의 행위와 기도), 성서봉독(사도행전, 서간, 구약에서 발췌), 대응송, 강론, 평화의 인사, 예물 준비, 성찬기도, 영성체로 끝났다. 그 뒤 5세기 초에는 이상의 요소들에 공동기도, 예물봉헌, 성찬기도의 고정(현재 사용되는 제1 성찬기도문), 주의 기도가 첨가되었다. 그리고 6세기 초엽에는 입당송, 기리에(‘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뜻을 가진 기도문), 대영광송, 본기도, 봉헌송, 봉헌 기도, 거룩하시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등이 첨가되었다. 7세기 중엽까지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성체와 성혈을 조금 들음, 천주의 어린 양 등이 도입 첨가되었다.
이와 같이 7세기 중엽에 와서는 오늘날의 서방 라틴교회 미사 형태가 거의 완성되었으며, 8-10세기에 유럽 지방에서 낮은 목소리로 하는 사적 기도들이 특히 입당과 봉헌과 영성체 부분에 삽입됐을 뿐이다. 그 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의 전례쇄신 의도에 따라 새로 정비된 성 비오 5세의 통일 미사경본이 1570년에 출간되었다. 이 미사경본으로써 로마 라틴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쇄신에 의한 미사경본이 출간될 때(1969년)까지 400년간 통일적이며 고정된 미사성제를 거행해 왔다. 16세기 말엽에 동양에 천주교가 전래될 때 이 고정화된 통일 미사경본을 사용해야만 했고, 따라서 18세기 말엽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된 천주교회도 이 미사경본에 따라 미사성제를 거행했다. 당시에는 토착화(土着化)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례용어로서 라틴어를 고수함으로써 신자들이 미사성제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1935년 덕원(德源)에서 미사경본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대본으로 사용되게 됨으로써 신자들의 미사 참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전례쇄신의 일환으로 개정된 바오로 6세의 미사경본에는 성찬기도 3개가 새로 첨가되었을 뿐 아니라, 모국어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복음과 구원진리를 선교적 선포의 강조로 성서봉독의 폭을 대폭 늘려 3년 주기로 봉독하게 하였고,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하여 미사 중의 역할을 분담케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을 기념하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의 잔치를 베푸는 미사성제는 가톨릭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다. 미사성제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최대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제사와 잔치의 성격을 조화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토착화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다. (최윤환(崔允煥))
교회 전례력에 따라 미사 때마다 그 내용이 변하는 미사 고유문과 구별되어 어느 미사에나 같은 내용으로 부르거나 낭송하는 부분을 말한다. 즉 기리에(자비를 구하는 기도), 글로리아(대영광송), 신경(사도신경), 상투스(거룩하시다), 미사 전문(성찬기도), 주의 기도, 아뉴스 데이(천주의 어린양), 영성체 부분, 영성체 후 폐회식 등이다.
미사 전문은 미사 통상문과 구별되어 불리기도 하는데, 입당노래 같은 미사의 고유 전례문의 작곡에 대하여 기리에.글로리아.그레도.상투스.베네딕투스.아뉴스 데이 같은 미사 통상 전례문의 작곡이 미사곡으로 지칭되고 있다. 14세기 이후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어 17세기까지는 미사 통상문의 모든 내용이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1969년 미사 통상문, 특히 사제 편에서 외던 부분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 미사 순서가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되었고, 각 기도문들도 간략하고 다양성 있게 개정되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게 드리는 예물. 이 예물을 드리는 신자는 사제에게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해 달라고 청하고, 사제는 그 지향에 따라 미사를 봉헌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주교가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를 드렸고, 평신도가 가져온 빵과 포도주를 미사의 제물로 사용했으며, 제물로 쓰고 남은 것은 성직자와 가난한 이웃의 생활비로 이용하였다. 그 후 빵과 포도주는 다른 예물로 대치되었다. 2세기에 이르러 미사는 평신도들의 가정에서 신자 몇 사람이 참례한 가운데 봉헌되기도 하였고, 신자들의 예물은 미사의 제물과 성직자의 생활비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자 개인의 특수지향으로 미사가 봉헌되지는 않았으며, 그런 지향으로 봉헌해 달라는 요청도 없었다. 미사예물에 이 요청까지 곁들여 이를 사제에게 드린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이며, 이 관습은 11세기에 널리 성행했다. 그러므로 미사예물의 성격은 초대교회에서의 신자들이 제물로 바치던 빵과 포도주에 상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제물의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교회 운영에 기여하며, 성직자의 생활과 사목활동을 경제적으로 돕는 의미를 가진다(교회법 946조).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1코린 9:13).
오늘날 미사예물은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미사봉헌 때마다 직접 미사예물로 지급할 수도 있고 기금을 세워 그 이자로 수차에 걸친 미사봉헌의 예물에 충당하게 할 수도 있다.
교회법(945-959조)은 미사예물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미사봉헌을 원하는 신자들, 특히 가난한 신자들의 지향에 따라 미사를 드려 줄 것을 사제들에게 권하는 등 미사예물에 관하여 자세히 규정하는 한편, 지역 주교회의에서 지역 사정에 알맞게 규정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그 규정이 없으면 교구의 관습에 따르게 하였다(교회법 952조).
한국 교회는 일찍이 미사예물에 관한 규정을 두어 일반적인 원칙을 세웠으나(한국 가톨릭 지도서), 미사예물의 액수.지급방법.용도.미사봉헌의 시기 등 구체적인 시행 관습은 시대마다 또 교구마다 다르다. 대체로 장엄미사의 예물은 평미사의 그것보다 많으며, 신자들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미사예물의 액수가 다양하다.
로마 전례의 미사에 있어 성찬기도. 오늘의 성찬기도 제1양식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모든 성찬의 전례에서 발견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을 재현.반복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설정하시면서 하신 “이는 내 몸이요, 이는 내 피다.”라는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로마 미사전문은 그리스의 것을 기초로 한 것이 틀림없으나 그대로 변형한 것 같지는 않다. 4세기에 성 암브로시오가 자신의 ≪De Sacramentis≫에서 인용한 형태와 비슷한 형태의 전문이 있었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재위 : 590-604)는 이를 수입하였고, 그의 시대에 사실상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몇몇 초기의 것들이 젤라시오 전례서와 봅비오 미사기도문집(Bobbio Missale), 7세기의 프란코룸 미사기도문집(Missale Francorum)에서 발견된다.
적어도 6세기부터는 ‘미사 전문’이라고 알려진 한 가지 성찬기도만이 서방교회에서 사용되었다.
전문은 감사송과 상투스 뒤에 놓이는데, 원래 상투스는 전문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전문은 보통 ‘Te Igitur’로 시작되어 짧은 기도들로 계속된다. 소위 ‘Memento’, ‘Cammunicantes’, ‘Hanc Igitur’, ‘Quam oblationem’, ‘Qui Pridie’, ‘Undeet Memores’ 등이다.
800년경부터 1967년까지 전문은 침묵 가운데 속으로 외워졌고 ‘Nobis Quoque Peccatoribus’와 맺는말인 ‘Per omnia saecula saeculorum’만이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였다.
1967년, 전문을 소리 내어 외는 것과 모국어로 외는 것이 인가되었다. 1968년에는 성찬의 전례신비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예부성성(the Congregation of Sacred Rites)은 서로 다른 세 가지 형태의 성찬기도를 제공하였다. 이후 미사 집전사제는 전문(제1양식) 이외에 제2양식, 제3양식, 제4양식 성찬기도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바칠 수 있게 되었다. (⇒) 성찬의 전례
미사 성체의 가장 장엄한 부분이며, 미사의 순서로는 ‘봉헌송’에서 ‘영성체 후 기도’까지의 내용. 옛말로 ‘제헌미사’라고 불린 것이다.
이는 최후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 취하신 행동에 따라 대체로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될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제물 준비,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대하여 성부께 감사하고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며 이를 봉헌하는 성찬 기도 그리고 하나의 빵을 나눔으로써 신자들의 일치가 상징되고, 영성체로써 성목요일사도들이 받아 모셨던 그리스도를 또한 받아 모시는 성찬식이 그것이다. (⇒) 성찬기도, 성찬식
성찬의 전례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 감사송부터 끝영광송(final doxology)까지의 부분. 그 주요 내용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회상하고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며(감사송), 구속으로 인하여 온 누리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우리의 왕이요 대제관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거룩하시다), 거룩한 변화를 위하여 성령께 청원하며(Epiclesis) 면병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고(거룩한 변화),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을 기념하며(Anamnesis) 제물이 되신 성체와 성혈을 성부께 봉헌하고(봉헌),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성인들의 전구(轉求)를 구하며(전구), 성삼위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끝영광송) 등이다.
오늘날 성찬기도는 네 종류를 두어 선택해서 사용하도록 했는데, 거룩한 변화의 말씀만은 통일되어 있다. 그 선택 기준에 따르면 제1 성찬기도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으나 특히 주일과 그 성찬기도에 이름이 나오는 사도들과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하고, 제2 성찬기도는 주간 평일과 특수한 경우(어린이 미사)에 사용하며, 제3 성찬기도는 특히 주일과 축일에 그에 맞는 감사송과 함께 사용하고, 제4 성찬기도는 감사송이 불변이므로 고유 감사송이 없는 날 사용할 수 있다. (⇒) 로마 미사 전문
성찬의 전례에 있어서 성부께 제물로서 제헌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빵과 술의 형상으로 나누어 먹고 마시는 의식. 미사성제의 순서로는 ‘주의 기도’에서 ‘영성체 후 기도’까지의 부분이며, 옛 말로 제찬봉령(祭粲奉領)이라 불린 것이다.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은 하느님 한 분에게만 속하는 것이고 그
제물이 올려진 제단 역시 하느님의 것이지만, 성찬식은 제사를 받으신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의 잔칫상에 초대하시는 것이다. 이 의식에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와 인간의 성화(聖化)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서 얻는 것이고, 내세에서 인간이 누릴 영화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더욱이 하느님의 잔칫상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고, 같은 잔치에 참여하는 형제들과의 일치 또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바친 제물은 다시 인류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된다는 것이고, 이 선물은 바로 인류의 구원이고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같은 하느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의 일치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로 인한 당신과 그리스도교인 상호의 내재성(內在性)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6-57).
미사 중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되고, 신자 상호 간에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① 성체(聖體)만 영(領)하는 것, ② 성체를 성혈(聖血)로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영하는 것, ③ 성체를 영하고 성혈로 축성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④ 성혈만 영하는 것 등의 4가지 방법이 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고(양형영성체),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온전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원칙대로 성체만 영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신자들은 영성체에 앞서 성체를 흠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혼과 육신의 준비를 하게 된다. 우선 성체를 영하기 위해선 성세성사를 받은 자로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므로 만약 대죄(大罪)를 지었다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받아 은총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성체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1코린 11,27-29). 또한 육신의 준비로, 한 시간 전부터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먹지 않는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 한다.
신자들은 성체를 영함으로써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와의 일치 및 신자들 간의 일치를 이루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헌신케 된다.
모든 신자는 이성(理性)이 갖추어진 자라면 교회의 규정에 따라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절에 영성체를 해야 한다(새 교회법 920조). 새 교회법 제917조에 의하면 이미 영성체한 자가 같은 날 다시 영성체하려면 자신이 참여하는 미사 중에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주일마다 혹은 매일 영성체할 것을 권장한다. (⇒) 성체성사
전례는 교회의 의식(儀式)이다. 교회가 성서나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는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안에서 그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Missa)이며, 그 밖에 성사 및 준성사, 성무일도, 성스런 행렬, 성체강복식 등이 전례 속에 포함된다. 이 말의 원어(原語)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0,11에 나오는 그리스어의 ‘liturgia’이며, ‘민중(laos)에 대한 봉사(ergon)’를 의미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구빈사업(救貧事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였다(2코린 9,12). 그런데 민중에 대한 봉사나 구빈사업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뒷날에는 교회의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를 통해서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되는 것이 전례라고 말한다.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과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곧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세계의 창조주로, 또한 주재자(主宰者)로 공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속죄를 드리며 기원한다.
전례의 주체는 교회다. 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현존(現存)한다. 미사에도, 성체 형상에도, 사제의 인격 속에도, 말씀 속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모인 곳에는 나는 그 가운데 있다”(마태 18,20)는 복음과 같이 교회에는 하느님이 현존한다. 비록 전례가 성직자에 의해 거행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의 위임에 따라 지정된 성직자가 거행하는 의식적 행위 전체라고도 정의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교회의 사제직이 지진 독특한 성격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제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뿐이다. 그는 대사제이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權能)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룩하게 된 사제는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대변자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종교의 의식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같이 기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성당의 설계도 다른 종교의 사원(寺院)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사원은 신상(神像)을 안치하는 하나의 작은 방인데 비하여, 성당(ecclesia)은 신자들의 집회소(集會所)이다. 때문에 사원이 외양(外樣)을 위주로 한 건축인데 비해, 내부를 위주로 한 건물이 성당이다. 여기서 전례가 바로 신자 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공동체를 위한 기도라는 점이 나타난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의 참여를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미사와 부활절 및 지켜야 할 축일에는 반드시 전례에 참여해야 한다.
전례는 외적인 형식을 존중하고, 기도와 성가도 큰소리로 불러야 하며, 일정한 장소와 때를 지킨다. 왜냐하면 모든 공동체적인 행동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적.시간적으로 확정된 중심과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례력(典禮曆, annus liturgicus) 혹은 성력(聖曆, annus sacer)이라고도 하며, 성주간과 성인들의 축일을 날짜순으로 배열하여 작성한 교회의 연력(年曆)이다.
교회력의 구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1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31일로 끝나는 일반 연력과 달리 교회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 주의 일요일에 시작되고, 성탄절.부활절을 거쳐 성령강림 마지막 주의 토요일로 끝난다.
교회력의 기준은 교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로, 이에 따라 대림 첫 주의 일요일도 일정하지 않고, 대개 사도 성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 30일경이 된다.
초대 교회에서의 교회력은 지방적인 특색이 강하여 교구마다 고유한 교회력에 따라 전례를 집행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1568년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교회력이 정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오 5세는 여러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인의 축일을 정비하고 그 가운데 87명의 성인만을 교회가 기념해야 할 성인으로 지정했다. 그 뒤 계속하여 새로운 성인이 탄생하면서 교회력은 다시 복잡해졌고, 최종적으로 정비된 것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 때의 일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02-111항)을 통하여 확인한 바의 원칙에 따라 교회력을 재편하였다.
규정에 따라 전례를 집행하는 형식과 절차를 가리키는 말로, 예컨대 미사나 세례식 등 성사와 준성사를 집행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이러한 전례 양식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바 있지만, 이것이 전승되는 가운데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전례 양식으로는 가톨릭 전례 양식과 동방정교회 전례 양식이 있다. 가톨릭 내의 전례 양식으로는 로마 전례 양식.안티오키아 전례 양식.알렉산드리아 전례 양식.갈리아 전례 양식 등이 있고, 동방정교회의 전례 양식은 16가지가 있다. 또한 수도원에 따라 서로 독자적인 전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고유한 전례 양식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교회법으로 이를 정하고 있으며, 교황청의 허가 없이 전례 양식은 변경될 수 없다. 그러니까 특정한 전례 양식은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야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교황 식스토 5세 이래 전례 양식에 관한 감독은 예부성성이 맡아 왔으며, 현재 그 업무는 성사 경신성성이 맡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동방교회의 전례 양식에 대해서는 동방교회성성이 맡고 있다.
교회음악 가운데 특별히 교회생활에 있어 중요한 행위의 전례, 즉 미사나 기타 성사(聖事)를 집행할 때 전례문(典禮文)에 결부된 노래로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
성음악은 전례의식의 관계가 있건 없건, 연주거나 듣거나 노래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성화시켜 주며, 인간 내부의 깊숙한 곳에서 진리를 찾게 하여 기도에로의 마음자세를 갖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어떤 형태의 것이건 ‘성음악’이란 용어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음악가, 작곡가는 이에 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종교음악이란 전례의식과의 직접적인 관계없이 종교적 감정의 표현에 해당하는 모든 음악을 말한다. 오라토리오.칸타타.영가(靈歌).고전성가(motet).수난곡.기타 종교적 영감을 받은 악기음악 혹은 오케스트라 작품 등을 일컫는다.
전례음악이란 교회가 법적으로 공적으로 전례 의식 안에 사용하도록 허용한 음악, 또는 실제 사용되었던 음악으로서 전례 의식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 하에서, 시대에 따른 전례의식의 변화와 아울러 인간의 표현(언어, 제스처)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공동체의 전례 의식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을 말한다. 기술적.심리적 고려에서 출발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 행위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전례음악의 멜로디는 그 성격상 전례 의식 속의 말씀(텍스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노래 불리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즉 전례 속의 말씀을 노래함이 우선적이고, 악기는 그 노래의 반주로서 또는 특수한 전례적 분위기 형성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한마디로 ‘전례 텍스트에 멜로디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음악은 그 성격상 순수한 음악의 가치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고, 텍스트의 본질적 요구에 응하는 방법으로서만 그 가치를 갖게 된다.
전례를 위해 교황이 공인한 책. 미사경본(Missale Romanum).성무일도서(breviarium Romanum).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주례용 예식서(Pontificale Romanum).순교성인록(martyrologium Romanum).약식서(memoriale rituum).성가집(liber antiphonalis).성사관계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 교회시대에는 미사 집전자에 따라 사용하는 전례서가 달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전례서가 범람하고 있었다. 때문에 건전한 전통을 보전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공인된 전례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많은 전례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놓은 것이 공인된 전례서이다. 그 뒤 전례서는 각 지역의 전례에 지침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시대에 부응한 전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전례를 위한 전례서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또 교회가 올바른 진보의 길을 걷기 위해 ‘전례서는 신학적 사목적 역사적으로 신중하게 연구된 이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개정되어야 한다.’고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1967년부터 이전에 사용하던 라틴어 전례서 대신 한국어로 된 전례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이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담은 성합(聖盒)이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성체는 그 안전을 위해 집 안에 모셨으나 4, 5세기경부터 성체를 성당에 모셔 두는 관습이 생겨 8세기에는 제단에 모시게 되었다.
1215년 제4차 라테란(Lateran) 공의회에서 이를 확정시키고 1918년 교회법으로 의무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감실을 견고한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안전하게 잠글 수 있도록 했으며, 적절하게 장식하여 성체의 위엄을 나타나게 하였다.
또한 미사 후에 감실에 성체를 모셔 두는 첫째 주목적은 노자영성체를 시켜 주는 데에 있고, 2차적 목적은 미사 외에도 영성체를 시켜 주며 그리고 형상 속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만들고 또 성체를 많이 모실 필요 없이 제대 중앙이나 제대 옆 등 성당의 적절한 장소에 위치하게 했으며, 성당 안에 단 하나의 감실만을 두게 하였다.
감실 앞에는 성체를 모셔 둔 것을 아리고 성체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작은 램프(성체불)를 켜 두도록 하였다. 신자들은 감실 앞에 지나갈 때 깊은 절을 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한다.
이 말은 ‘제사(祭事)의 장소’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 가톨릭교회에서 미사성제가 봉헌되는 단(壇)을 말한다. 순교자의 유해(遺骸)가 그 안에 안치되기도 하는데, 이는 초기 교회나 카타콤바(Catacombae), 즉 지하묘지에서 순교자의 무덤 위에 돌로 세운 벽감(壁嵌)에서 의식을 행하던 것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상의 개혁으로, 교황청은 미사 드리는 성당의 정리와 장식에 대한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 1969, No.260∼270)을 발표했는데, 이에 의하면 제단은 고정(固定)제단일 수도 있고, 이동(移動)제단일 수도 있다. 거룩한 장소가 아니면 예외적으로 보통 상 위에 흰 보와 성체포를 깔고 미사를 드릴 수 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를 등진 상태로 미사의식을 행했으나 지금은 사제가 주 제단(主祭壇)의 주위를 자유로이 걸어 다니고 신자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벽과 충분한 공간을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보통 주 제단은 견고하고 품위가 있어야 하며 고정되고 축성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제단에 성인의 유해를 두는 관습이 권장되고 있는데, 먼저 유해의 확실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특별히 종교적인 용도를 위해 사제(司祭)가 교회의 이름으로 축성(祝聖)한 물. 물은 종교적 정화(淨化)의 상징으로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이집트의 고대 종교 등에서도 제단에 오르기 전에 몸을 씻는데, 부정(不淨)을 쫓을 때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성수의 사용은 구약시대부터 유래되어(탈출 30,18-21), 2세기에 이미 집을 축성하기 위해 성수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4세기에, 서방교회에서는 5세기에 보편화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신체적인 위험과 유혹의 순간에 악령(惡靈)의 힘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성수를 사용한다. 특별히 성당에 들어가기 전 성당 입구에 놓인 성수반(聖水盤)에 채워진 성수를 손에 찍어 성호를 긋는다. 옛날에는 주일미사 전에, 사제가 큰 성수채로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성수예절을 거행했었다. 성수는 사제의 축성과 축복.헌당식.구마식.장례 예절 등에 사용되며, 교회는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도 성수를 사용할 것을 장려한다.
성수는 그 용도에 따라 보통의 성수(구약시대에 예언자 엘리세오가 하듯이, 방부제로 약간의 소금이 섞여진다)와 성세성사(聖洗聖事)에 쓰이는 성세수, 부활절에 특별한 예식으로 축성되는 부활절 성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수를 뿌리는 예절. 성세성사를 집전할 때 예외적인 상황에서 세례 지원자의 이마에 정화수를 뿌려 세례를 주던 살수례(撒水禮)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준성사의 하나로 축성이나 강복을 하는 예절 속에 포함되어 거행된다.